노인 일자리 동네 주민센터 덕분에 웃게 됐어요

나를 다시 일으킨 작은 현수막 하나

작년 겨울이었어요. 딸이 결혼하고 나서, 집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죠. 남편은 늘 하던 대로 출근하고, 저는 멍하니 아침을 차리고 치우고,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다가 하루가 지나가더라고요. TV를 켜놓긴 했지만 뭐가 나오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이러다 진짜 병 나겠다’ 싶을 만큼 무기력해졌죠.

딸이 떠나고 나니까, 집이 집 같지 않았어요. 말 한마디 주고받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 나 혼자 있으니까 마음이 텅 비는 것 같았어요. 전화라도 한 통 와줬으면 좋겠는데, 요즘 애들은 연락도 뜸하잖아요. 친구들도 다들 바쁘고…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주민센터 앞 현수막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어요.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상하게 그날은 눈길이 오래 머물렀어요. 뭔가 마음속에서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나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어설픈 첫 발걸음, 민망했던 순간들

며칠을 망설이다가, 진짜 운동복 차림에 모자 눌러쓰고 조심스럽게 주민센터로 갔어요. 그냥 물어만 보자, 뭐 그런 마음이었죠. 문 앞까지 갔는데 안으로 못 들어가고 두 번이나 그냥 돌아섰어요. 안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람들 모습 보니까 뭔가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괜히 내가 나이 들었다고 초라해 보일까봐…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TV를 보다가 눈물이 펑 터졌어요. 어떤 다큐에서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가 봉사활동 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는 내용이었는데, 보다가 그냥 확 무너져버렸죠. 그날 밤엔 거의 잠도 못 잤어요. 그래서 다음날,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주민센터에 갔어요.

상담을 받는데, 세상에… 너무 긴장해서 이름 적는 칸에 주민번호 쓰고 있었더라고요. 직원분이 살짝 웃으시면서 ‘선생님, 여긴 성함 적으셔야 해요~’ 하시는데, 얼굴이 화끈거려서 진짜 땅속으로 숨고 싶었어요. 민망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긴장을 조금 풀어줬던 것 같기도 해요.

엇갈린 시작, 포기하고 싶던 순간

처음에는 ‘환경정비 도우미’로 배정받았어요. 동네 골목을 다니면서 쓰레기 줍고, 낙엽 쓸고… 그거야 어렵진 않겠다 싶었죠. 근데 문제는 시간대였어요. 아침 7시까지 출근이더라고요. 겨울에는 아직 해도 안 뜰 때 나가야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한 번은 눈 오는 날,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졌는데, 손목을 살짝 삐었어요. 그날 따라 너무 추워서 장갑도 안 끼고 나갔는데… 손끝이 얼얼하고, 손바닥이 까졌죠. 그때 ‘내가 이 나이에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집에 와서 펑펑 울었어요. 남편한테는 말도 못 하고요.
결국 그 일자리는 중도에 포기했어요. 포기했다기보다 몸이 안 따라주니까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다시 찾아온 기회, 뜻밖의 전환점

며칠 뒤였나…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어요. ‘복지시설 지원 보조’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혹시 관심 있냐고요. 솔직히 망설였어요. 또 그만두게 되면 더 실망할까봐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까, 실내에서 하는 일이고,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일하는 거라 무리 없겠다 싶었어요.

첫 출근 날, 새로 산 단정한 바지를 입고 갔어요. 약간 설레는 마음도 있었고요. 복지관에서는 주로 어르신들 식사 보조하고, 안내해드리는 일이었어요. 일도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누가 내게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해주는데,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사람 속에서 다시 살아난 감정들

복지관 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쌓이더라고요. 매일 뵙는 어르신들 중에 어떤 분은 제 이름까지 외워주셨어요. “김 선생~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하시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란 게 그렇게 고맙고 울컥하더라고요.

일이 끝나고 나면 직원 분들이랑 커피 한 잔 나누는 시간도 너무 소중했어요. 다들 나랑 비슷한 또래이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는데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혼자 있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사람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죠.

작은 실수, 웃으며 넘긴 에피소드

일하다 보면 실수도 있었어요. 한 번은 어르신 도시락 수량을 잘못 체크해서 하나가 부족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어르신 한 분이 “괜찮아, 나는 원래 아침 안 먹는 스타일이야~” 하시면서 웃으시는데, 어찌나 죄송하고 민망했는지… 그날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결국 다음 날 아침, 직접 샌드위치 사들고 가서 드렸더니, 그 어르신이 껄껄 웃으시면서 “이제 우리 친구다~” 하셨어요.
그때부터는 메모지에 하나하나 적으면서 철저히 확인하고 있어요. 뭐든지 익숙해질 때가 진짜 조심해야 하는 법이더라고요.

요즘은 내 하루가 이 일로 채워져요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출근하는 날은 아침부터 바빠요. 옷 챙겨 입고, 도시락 있는 날은 작은 보조가방도 챙기고요.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만 하던 일이, 이젠 없으면 허전해져요. 오히려 ‘다음 주 일정 언제 나오지?’ 하면서 기다리게 됐어요.

주민센터 직원분들도 이름을 외워주시고, 이제는 누가 먼저 인사도 해주세요. 명절 때는 간식도 하나 챙겨주시고요. 작은 것 하나하나에 마음이 참 따뜻해져요.

딸에게도 들은 뜻밖의 한마디

얼마 전엔 딸이 집에 왔다가 제 모습을 보고 그러더라고요.
“엄마 요즘 얼굴이 되게 밝아졌어.”
그 말에 순간 울컥했어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는데, 딸이 또 한마디 덧붙였어요.
“엄마, 일하는 게 그렇게 좋구나?”
그제야 제 스스로도 알겠더라고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이 다시 살아난 거라고요.

내가 직접 해보며 느낀 일자리별 차이점

일자리 종류 근무 시간 업무 내용 힘들었던 점 좋았던 점
환경정비 도우미 오전 7시~9시 골목 쓰레기 수거, 낙엽 청소 등 너무 이른 출근 시간, 추위에 고생 동네가 깨끗해져서 보람 느꼈음
복지시설 지원 보조 오전 10시~오후 1시 어르신 식사 보조, 안내, 말동무 식수 수량 체크 실수, 눈치 보임 어르신들과 정이 들고 하루가 활기참
동네 순찰 안전 활동 오전 9시~11시 무단투기 단속, 골목길 순찰 비 오는 날 근무, 지인 마주칠 때 민망 주민들 인사에 기분 좋아짐

나만의 작은 실수들, 지금은 다 추억이에요

언제 일어났는지 어떤 실수였는지 그때 기분 나중에 어떻게 풀었는지 지금은 어떤지
첫 상담 날 이름 적는 칸에 주민번호 씀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달아올랐음 직원분의 웃음 덕분에 분위기 풀림 지금은 서류 작성 익숙해짐
복지관 근무 중 도시락 수량 하나 빠뜨림 죄송하고 민망했음 다음날 샌드위치 드리고 사과드림 메모 습관 생겨 실수 줄어듦
환경정비 중 비 오는 날 우비 안 입고 나감 추위에 손 끝이 얼얼했음 감기 걸려 며칠 쉬고 철저히 준비함 비 오면 미리 체크하고 잘 챙김
순찰 활동 중 잘못된 집 무단투기 신고함 얼굴 들기 민망했음 직접 찾아가서 정중히 사과드림 사진 두 번 확인하는 습관 생김

마음속에 오래 남는 한마디

지금도 가끔 떠올라요. 처음 주민센터 상담받을 때, 한참 긴장해서 말을 더듬던 저에게 직원분이 해준 말이요.
“할 수 있으셔서 오신 거예요. 여기 계신 분들 다 그렇게 시작하셨어요.”
그 말 한마디가 저를 붙잡아줬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그때 용기 내서 한 발자국 내딛었기 때문이겠죠.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정말 값진 일이에요. 지금도 가끔 지나가다 주민센터 현수막을 보면, 그날의 제 모습이 겹쳐 보여요.
그리고 속으로 한마디 하죠.
‘잘했어. 진짜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