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빠르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 순간 나 혼자 남은 것 같았어요
며칠 전에도 그랬어요.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서 조용히 거실에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더라고요. 뭔가를 잊고 있는 느낌인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TV는 켜져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기분.
남편은 퇴직 후 거의 집에만 있고, 딸은 결혼해서 외국에 있고, 아들은 바쁘고… 내가 너무 가만히만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날 밤에 혼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시니어인턴십’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게 뭔데?’ 싶었어요. 시니어니까 노인 일자리인가 싶었고, 인턴이라니… 그건 왠지 학생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싶었고요. 근데 또 괜히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이상하죠.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간 건데, 자꾸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고, 다음날 눈 뜨자마자 다시 검색을 해봤어요. 그때부터였어요.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신청하기까지, 내 마음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요
정보를 찾아보니까 지역 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그냥 가서 물어나 보자 싶어서 직접 찾아갔는데… 너무 조용하고 단정한 사무실 분위기에 괜히 내가 방해하러 온 것 같고, 뭔가 말 꺼내는 게 쑥스러웠어요.
근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정말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인턴십은 기업이랑 연계된 프로그램이에요. 선생님처럼 경력 있으신 분들께 적합해요. 근무도 너무 무리 안 되게 설계돼 있고요.”
그 말에 조금 마음이 놓이긴 했어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이력서… 자기소개서…
와, 이건 진짜 몰랐는데 요즘 양식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예전에는 그냥 한글 문서 열고 기본 양식 쓰면 됐는데, 지금은 사진도 붙이고 뭔가 자소서 문장도 있어 보이게 써야 하고.
하아… 그때 딸한테 물어봤다가 잔소리만 한 사발 들었죠.
“엄마, 요즘 이런 글 누가 봐. 완전 옛날 스타일이야.”
기분 살짝 상했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밤에 혼자 커피 한 잔 타놓고 앉아서 한 줄 한 줄 다시 썼어요.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처음엔 머리가 하얘서 멍했는데, 쓰다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괜히 울컥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싶어서요.
면접 보러 가던 날, 손에서 땀이 줄줄 났어요
면접이 잡힌 날, 한참 고민했어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무슨 인턴이야’ 하면서 옷장에서 몇 번이고 옷을 꺼냈다 넣었다 했죠.
어떤 옷이 덜 나이 들어 보일까 고민도 하고,
입술에 립스틱 바르다 말다 반복하고…
결국 새로 산 단정한 블라우스 입고 갔는데,
면접장 들어가자마자 심장이 뛰는 게 막 느껴졌어요.
질문은 평범했는데,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고
한 번은 ‘엑셀 사용해보셨나요?’에
순간 얼어서 “어… 조금요…” 하고 웃음으로 넘겼는데
속으로는 ‘왜 거짓말했지… 조금도 못 하면서…’ 싶었어요.
그래도 담당자 분이 웃으시면서
“천천히 하시면 돼요. 많이 가르쳐드릴 수 있어요.”
그 말에 마음이 좀 풀렸어요.
며칠 뒤, 합격 문자 받았을 때 진짜 기분 묘했어요.
“어머, 진짜 되긴 되네… 나도 아직 사회에 쓸모 있구나”
괜히 신나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어이구~ 이제 돈 버시게요?” 하면서 놀리더라고요.
그래도 그 말이 싫지 않았어요.
실수도 많았고, 속상한 날도 있었지만…
출근 첫날, 회사 입구에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다 젊은 사람들이면 어쩌지, 내가 너무 튀지 않을까…
근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생각보다 다들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문제는 컴퓨터였어요.
마우스가 안 움직이길래 한참을 껐다 켰다 했는데
옆자리 직원이 슬쩍 와서 보더니
“배터리 나갔어요. 여기 여분 있어요.”
와… 그 순간 진짜 얼굴이 화끈했어요.
괜히 못 들은 척하면서 “아, 그런 거였어요?” 하고 넘겼지만
속으론 ‘아, 창피해 죽겠네…’ 했죠.
회의록 쓰라고 하셨을 때도, 줄 간격 맞추는 법 몰라서
한참 버벅였어요.
예전에 워드로 문서 만들던 버릇이 남아서
새로 배운 엑셀 단축키 쓰는 게 진짜 어려웠어요.
집에 와서 혼자 유튜브로 엑셀 강의 보고
연습장에다 함수 연습하고…
손가락 아프게 눌러가면서 하니까
조금씩 감이 오더라고요.
그땐 정말, 늙은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었던 거구나 싶었어요.
내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3개월의 인턴십이 끝났을 땐
정말 섭섭했어요.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직원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중 어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이 계셔서 저희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웠어요.
어르신이 아니라 진짜 동료 같았어요.”
그 말에 목이 콱 메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그 감각…
그게 사람을 살리는 거더라고요.
지금은 다시 일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의 경험이 제 삶을 많이 바꿔놨어요.
자신감이 생겼고,
집에만 있던 제가 이제는
동네 커뮤니티 글도 올려보고,
가끔 자원봉사도 찾아다녀요.
돈을 많이 벌진 않지만
마음이 훨씬 부유해졌어요.
무기력이라는 게 사라졌달까.
하루하루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나의 시니어인턴십 여정 정리표
단계 | 당시 상황 | 감정과 고민 | 기억에 남는 장면 |
---|---|---|---|
1단계: 관심 생김 | ‘시니어인턴십’ 안내문을 처음 봄 |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막연한 불안 | 커피 마시며 핸드폰 검색하던 밤 |
2단계: 신청 준비 | 이력서, 자기소개서 작성에 어려움 |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자존감 흔들림 | 혼자 밤새며 자소서 다시 쓰던 순간 |
3단계: 면접 도전 | 면접장에서 긴장하며 응시 | 긴장, 불안, 후회 | 엑셀 질문에 얼어붙은 순간 |
4단계: 인턴십 시작 | 낯선 업무환경, 디지털 장비 어려움 |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위축감 | 마우스 배터리 없었던 당황한 첫날 |
5단계: 적응과 성취 | 문서작업·지원 업무 잘 해냄 |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자각 | 대표님이 칭찬해주던 날 |
6단계: 마무리 후 변화 | 3개월 인턴십 종료 후 새로운 활동 참여 | 아쉬움과 동시에 새로운 동기 부여 | 동료가 “선생님 덕분에 편했어요” 했던 말 |
7단계: 현재 | 자원봉사, 지역 활동, 단기 일거리 참여 | 내 삶에 활력과 의미 생김 |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시작할 때”라는 문장 |
마지막으로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가끔은 생각해요.
그날, 그 안내문을 그냥 넘겼다면
지금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겠죠.
한 걸음 내딛는 게
그렇게 큰 일이었나 싶기도 해요.
이제 저는 ‘나중에’란 말을 잘 안 써요.
‘지금 해보자’라고 해요.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그 과정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니까요.
다른 분들도 망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은 누가 해줘야 아는 게 아니에요.
직접 해보면 달라요.
정말, 해보세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정말이에요.